"----무술이 네 단계의 경지에 오르면 작은 것이 이기는 도리를 알게 된다.
건강의 비결은 나를 주장하지 말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일곱 형제에서 여섯째로 태어난 박 원장은 중학교 시절에는 검도를 했고, 고등학교 시절엔 태권도를 배웠다. 당시 대만에서 유학하며 태극권을 익힌 셋째 형이 고향(청주) 집에 와서 태극권을 하는 것에 매료된 박 원장은 태극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셋째 형에게 태극권을 3년간, 혼자 산속에서 3년간, 전국을 떠돌며 태극권 고수와 3년간 추수하며 수련을 했다.
그러나 ‘강한 가운데 부드러워야 하고, 빠르면서도 느려야 한다. 쥐는 듯하다가 펴야 하고, 내려가면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기 어려웠다. 특히 “멈춘 가운데 움직여야 한다(정중동·靜中動)” “힘을 쓰지 말고 뜻을 써라(용의불용력·用意不用力)” 등은 도무지 그 뜻을 헤아리기 힘들었다.
중국과 대만을 오가며 태극권을 수련하며 박 원장은 모든 무술은 네 단계를 거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처음 ‘짐승의 단계’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이기고,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이기는 단계다.
두번째 ‘초식의 단계’는 무술의 기술이 힘을 제압하는 단계다.
세번째 ‘조화의 단계’는 자연의 힘을 활용하는 단계이다.
네번째 ‘응물자연(應物自然)의 단계’가 되면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기는 도리를 알게 된다. 그래서 태극권은 느림이 빠름을 제압한다.
박 원장은 “나를 주장하지 말고 주변의 환경에 나를 맞춰가면서, 주변의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정의한다. 또 근육의 단련보다는 온몸 관절의 열고 닫음(환골탈태)이 무술의 요체임을 강조한다.
“태극권은 강물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미는 것처럼 홀연히 빠르다가 느려집니다. 빠르기는 파도의 머리처럼, 느리기는 파도의 끝처럼….”
움직이면 물이 흐르는 듯, 멈추면 산이 서 있는 듯, 박 원장의 태극권은 유려하고 깊다.
1. ---중국 베이징 사범대의 찻집 앞에서 수련하는 여인. 50대의 여자인데도 태극권 몸놀림은 예사롭지 않았다. 당시 24살의 청년은 여인을 마주하고 두 손을 올려 추수(推手·손을 밀어 낸다는 뜻으로 서로 겨루는 것)를 하였다.
이미 10여년 한국에서 태극권을 익혀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었던 청년은 힘을 쓰려는 순간, 몸이 ‘붕’ 떠서 3~4m 뒤에 있는 화단에 처박힌 자신을 발견했다. 청년은 곧바로 귀국해 짐을 싸고 다시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3년간 중국의 태극권 고수를 찾아다니며 태극권을 익혔다.
2. 베이징 중앙의 천단공원에서 한 노인과 마주했다. 오가(吳家) 태극권의 고수. 젊은 시절 유도도 했던 노인은 엄청난 힘으로 청년의 손을 제압했다. 그 힘에 빨려들어 몸의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는 순간, 청년은 자신의 힘을 모두 뺀 채 한 손으로 노인의 가슴을 가격했다. 공격하던 노인이 오히려 뒤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청년은 태극권에서 이야기하는 사기종인(捨己縱人·자신을 버리고 남을 따른다)의 이치를 깨달았다. 그 뒤 청년의 태극권은 한 단계 발전했다.
3. 1995년 겨울 귀국을 앞둔 청년은 숙소 주변의 공원에서 아침마다 태극권 수련을 하던 할아버지와 마주 섰다. 노인이 공격을 하였다. 청년은 노인의 손을 살짝 옆으로 흘린고 노인의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이제 그동안 수련한 발경에 노인이 뒤로 날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인의 오른손 바닥이 자신의 어깨에 살짝 닿는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그 충격은 마치 척추에 발갛게 달군 인두를 갖다 댄 듯 엄청났다. 푹 고꾸라진 청년은 수련용 검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청년은 그 척추 내상을 스스로 치료하며 중국 전통 건강법인 도인술(導引術)에 눈을 떴다.
<일부 편집>